20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의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이후, 우리 사회는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하는 듯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사법부의 선언은 사회적 담론을 촉발하며 변화의 서막을 알렸다. 그러나 그로부터 어느덧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입법 미비로 인한 ‘법적 진공 상태’는 해소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단순히 기존 법의 효력을 중단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회가 새로운 법적 기준을 마련할 것을 명령한 것이었으나, 입법권자의 방관 속에 여성의 권리 보장은 여전히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먼저 헌법불합치 결정의 배경과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임신 중지를 처벌하는 낙태죄 조항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락한다고 판단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해당 조항이 즉각 무효화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 기간 법의 효력을 유지하면서 그 사이에 국회가 적절한 입법을 완료하도록 유예를 두는 결정이다. 즉, 국회에는 임신 중지에 대한 허용 범위, 시기, 의료적 가이드라인 등을 포함한 새로운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부여된 것이다. 하지만 국회는 여전히 여야 간의 이해관계 충돌과 사회적 합의 도출의 어려움을 이유로 입법 논의를 미뤄왔으며, 이는 결국 법적 근거가 없는 ‘입법 공백’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이러한 입법 부재가 가져온 가장 직접적인 피해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법적 보호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났다는 점이다.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여성이 임신 중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신체와 삶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때,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임신 중지가 더 이상 형사 처벌의 대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이를 어떤 방식으로 지원하고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권리의 표준’이 부재하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자신의 건강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내리는 과정에서 법적 불확능성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는 결국 여성의 삶을 불안정한 상태로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의료 체계의 붕괴와 사각지대 발생 위험이다. 임신 중지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를 넘어, 안전한 의료 환경과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가 보장되어야 하는 의료적 영역이다. 그러나 입법 공백으로 인해 임신 중지 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의료 가이드라인이나 수가 체계, 의료진의 법적 책임 범위 등이 마련되지 않았다. 이는 의료 현장에서의 극단적인 혼란으로 이어진다. 과거 36주에 이르는 산모 사례와 같이, 적절한 의료적 개입과 제도적 지원이 절실한 위기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대응할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점은 매우 위험한 징후다. 의료진 또한 명확한 법적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의료 행위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이나 책임 추궁을 우려하여, 임신 중지 관련 의료 서비스 제공을 기피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의료 사각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법적 불확실성은 사법부의 판결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최근 법원이 권 씨에 대한 형 집행 유예 판결을 내린 사례는,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개별적인 사건들이 법원의 판단에만 의존하여 해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법원의 판결은 개별 사건에 대한 사법적 정의를 실현하는 역할을 하지만, 이는 결코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법적 기준이 될 수 없다. 판결에 의존하는 방식은 의료 현장과 시민들에게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지 못하며, 오히려 법적 갈등을 가중시키고 의료 체계의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판례가 법의 역할을 대신하는 상황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이러한 문제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닌, 대한민국 시민 전체의 안전과 직결된 사안이다. 특히 의정부와 경기북부 지역을 비롯한 지역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입법 공백은 지역 내 의료 서비스의 신뢰도와 접근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의료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지역 내 의료 체계마저 법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위축된다면 지역 여성들의 건강권은 더욱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 시민들은 안전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은 명확한 입법을 통한 제도화에 있다.
결론적으로, 7년이라는 시간은 입법을 위한 논의를 거듭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입법의 공백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이행할 책무를 다하여,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의료진과 환자 모두가 안전하게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의료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여성의 건강권과 안전에 대한 사회적 우려는 계속될 것이며, 이는 곧 우리 사회 전체의 법적·의료적 안전망의 결핍으로 남게 될 것이다.
김미래 기자 | 의정부포스트
참고: 정부 ·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