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상훈
나는 주로 새벽에 글을 쓴다.
낮에는 생각이 흩어진다. 해야 할 일들이 있고, 연락이 오고, 바깥의 소리가 들어온다. 그러나 새벽에는 세상이 잠시 느려진다. 집 안의 불빛은 작고, 창밖은 조용하고, 문장은 그제야 조금씩 앞으로 나온다. 나는 그 시간에 앉아 내가 지나온 일들을 다시 바라본다.
내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생각을 남기기 위해서다. 이것은 단순한 기록 욕심이 아니다. 생각은 적어두지 않으면 너무 쉽게 사라진다. 어떤 날에는 분명히 중요하다고 느꼈던 질문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진다. 나는 그 흐려짐이 두려웠다. 그래서 썼다.
『대한제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쓸 때도 그랬다. 내가 붙잡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과거의 이름이 아니었다. 끝났다고 믿는 것이 왜 다른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제도는 바뀌었는데 사람을 움직이는 방식은 왜 쉽게 바뀌지 않는지, 그런 질문들이 나를 책상 앞에 앉혔다.
그 책은 내게 하나의 결론이라기보다 긴 질문이었다. 나는 사회학자도, 정치학자도, 경제학자도 아니다. 그러나 한 시민으로서, 한 생활인으로서, 내가 본 구조를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는 전문가만 질문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내가 붙잡은 질문은 후자에 가까웠다. 살아가는 사람이 자기 시대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브런치에 「세계 구조를 읽어보자」라는 글들을 이어간 것도 같은 이유였다. 세계를 분석한다는 말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내게 그것은 결국 내 삶을 이해하려는 일이었다. 왜 어떤 나라는 되고, 어떤 나라는 안 되는가. 왜 같은 노력도 다른 결과를 낳는가. 왜 좋은 말은 많은데 좋은 절차는 부족한가. 이런 질문들은 뉴스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도시와 내가 겪은 하루 안에도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은 대단한 힘을 주지 않는다. 문장 하나가 현실을 즉시 바꾸지는 못한다. 새벽에 쓴 글이 아침의 문제를 없애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글은 적어도 내 생각을 남겨준다.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에 흔들렸는지, 무엇을 그냥 넘기지 못했는지를 기록하게 해준다.
사람은 자기 삶을 해석할 권리가 있다. 거대한 기관이나 전문가의 말만으로 한 시대가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골목을 걷는 사람, 물건을 팔아본 사람, 회의가 끝난 뒤 돌아오는 사람, 새벽에 혼자 앉아 있는 사람도 자기 언어로 세계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언어를 찾고 있다. 아직 완성된 문장은 많지 않다.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지나치게 길고, 때로는 나중에 다시 읽으면 고치고 싶은 문장도 있다. 그래도 쓴다. 쓰지 않으면 내가 본 것들이 너무 쉽게 사라질 것 같기 때문이다.
새벽은 조용하지만 완전히 비어 있지는 않다. 그 시간에는 지나간 하루의 소리들이 낮게 남아 있다. 나는 그 소리들을 문장으로 옮긴다. 내 생각을 남기기 위해, 내가 본 세계를 조금 더 오래 붙잡기 위해,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읽었을 때 내가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새벽의 작은 책상 앞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들을 문장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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